번역을 하다보면 말의 순서와 표현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신경이 쓰인다. 저자의 문장의 구조를 살릴 것인지, 의미를 살릴 것인지를 놓고 고민이 되곤 한다.
번역 연구의 자료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성서가 떠올랐다. 워낙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같은 언어 안에서도 여러 번역본이 있어서 비교 연구 자료로서 쓰임새가 많다고 느껴진다.
예컨대, 시편 122편 1절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편 122:1 (개역개정)
이 문장은 크게 세 단위로 구성된다: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2)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3) 내가 기뻐하였도다.
같은 구절의 영어 번역 순서는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1) 나는 기뻤다 (2) 그들이 내게 말했을 때 (3) 여호와의 집으로 들어가자.
I was glad when they said unto me, Let us go into the house of the LORD.
Psalm 122:1 (King James Version)
일본어의 경우 번역본마다 다른데, 新改譯의 경우 우리말 순서와 비슷하다. (1) 사람들이 나에게 (2) 주의 집으로 가자라고 말했을 때 (3) 나는 기뻤다.
人々が私に、「さあ、【主】の家に行こう」と言ったとき、私は喜んだ。
詩篇122: 1 (新改譯)
한편, 일본어 新共同譯의 순서는 (1) 주의 집에 가자 (2) 라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3) 나는 기뻤다
主の 家に 行こう, と 人々が 言ったとき /わたしはうれしかった.
詩篇122: 1 (新共同譯)
중국어 Union Version도 우리말 순서와 같다. (1)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2) 여호와의 전으로 가자 (3) 나는 기뻤다.
人对我说,我们往耶和华的殿去,我就欢喜。
诗篇 122 (Union Version)
궁금한 것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이 세 단위의 순서가 과연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문장에는 두괄식도 있고 미괄식도 있는 것이니 맨 앞에 나오는 내용이 꼭 중요한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번역본마다 이렇게 다르니 어쨌든 이 시의 저자는 세 단위 중 무엇을 맨 앞에 두었을지 궁금했다.
히브리어 성경 풀이를 참조해 보았더니 원문의 순서는 영어와 같았다. 즉, (1) 나는 기뻤다 (2) 사람들이 말했을 때 (3) 여호와의 집으로 가자.
원문처럼 “나는 기뻤다”를 맨 앞에 둔 것은 감정의 표현(expression)에 가깝고, 우리말 번역처럼 “나는 기뻤다”를 맨 뒤에 둔 것은 상황 설명(explanation)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히브리어 원문과 영어 번역에서는 “나는 기뻤다”라는 개인의 감정 표현이 먼저 언급되는 반면, 한국어, 일어, 중국어에서는 나의 감정보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먼저 언급된다. 문화에 따라 개인의 감정과 주변의 상황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주는지가 번역의 차이에서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을까?
번역시 문장 구조의 차이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예는 신약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의 경우. 우리말 번역은 (1) 어떠어떠한 자는 (2) 복이 있다 로 되어 있는 반면, 그리스어 및 영어 성경은 (1) 복되도다 (Blessed are…) (2) 어떠어떠한 자여 의 구조로 되어 있어 말의 순서가 주는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번역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