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뵐 때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잘 지내는지, 특히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지 꼭 물으신다. “공부 잘 하는 것”이 단순한 안부의 한 표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도널드 밀러의 책을 읽다가 문득 들었다. 아버지께서 학창 시절을 보내신 1950년대와, 이어진 시절 동안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사회에서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셨기 때문일까? 내가 대학교에 합격하고 또 10년 후 학위를 받았을 때 기뻐하신 것도 그런 맥락이었는지도 모른다. ]]>
[글쓴이:] soonu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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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뮤다 토스트기 체험
내가 다니는 공유 오피스에 어느날 와보니 공용 키친에 발뮤다 토스트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존 토스트기와 어떻게 다른지 너무나 궁금했던 터라 바로 나가서 근처 파리바게트와 편의점에서 빵 두 종류와 버터를 사왔다.
이 토스트기의 특징은 빵을 굽기 전에 5ml 정도의 물을 부어넣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조그마한 계량컵이 따라온다. 그러나 이 제품의 명성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매번 물을 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치된 토스터 주변에 부속품인 5ml 계량컵이 보이지 않았다. 설치한 사람도 박스에 들어있는 자그마한 컵이 중요한 부속품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1 티스푼이 약 5ml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숫가락으로 그 정도의 물을 주입구에 넣고 다이얼을 3-3.5 정도로 맞춰 빵을 구워 보았다. 보통 토스트기가 5만원 정도인데 이 토스트기의 가격은 그 다섯 배인 25만원 정도다. 이런 기계에서 구워내는 빵은 과연 어떤 맛일까? 일 년 넘게 품어왔던 궁금증이 마침내 풀리는 순간이었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첫 인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속은 촉촉하게, 겉은 바삭하게 굽는다는 말이 맞다. 특히 겉을 “바삭”하게 구워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바삭한 식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이 토스트기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 먼저 5ml의 물을 넣어주어 토스트기 내부에서 스팀을 발생시키는 것이 빵을 촉촉하게 만드는 비결이 아닌가 추측된다. 만약 그렇다면 식빵을 밥이 들어 있는 밥솥에 잠깐 넣어두었다가 일반 토스트기에서 고온으로 짧게 구우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도 같은데.
- 제품 조작시 들리는 삐삐삑 거리는 신호음이 아주 크지도 않고 아주 작지도 않게, 섬세한 소리로 들린다. 다이얼을 돌릴 때 느껴지는 부드럽고 미세한 저항감 등이 좋은 느낌을 전달한다.
- 토스트는 따뜻할 때 먹으면 더 맛있다. 느낌인지 몰라도 이 토스트기로 구웠더니 따뜻함이 더 오래 가는 것 같았다.
- 이 토스트기에서 구운 빵 두 종류를 아무 것도 안 바르고 입에 넣었을 때 “겉이 바삭하네”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맛있다”라고 느끼지는 못했다. 토스트기가 아무리 좋아도 기본 바탕이 되는 빵이 맛있어야 한다. 빵에 버터와 잼을 바르면 더 맛있어 진다. 사실 빵 자체가 맛있거나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다면 일반 토스트기로 구운 빵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빵을 굽는 방법도 다양하고 맛있게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그 위에서 빵을 굽는 것 만으로도 맛있는 토스트가 완성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장이 반찬이다. 발뮤다의 토스트기는 빵을 먹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의 대안이다.
가습기, 토스트기, 공기청정기와 같은 일상적인 물건에 대해 섬세한 감각이라는 요소를 가미하여 세계적인 히트 제품을 줄줄이 출시하는 발뮤다와 테라오 겐 대표의 제품 기획 능력을 통해 배울 점이 대단히 많다. 특히 섬세한 감각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맥락에서 그들의 제품이 빛을 발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섬세한 감각이 중요하지 않은 맥락에서는 “뭐가 이렇게 비싼 거야”라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간 이 토스트기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른 이야기지만 내가 방문했던 그 사무공간에는 다양한 물건을 전시용 소품으로 갖다 놓는 경향이 있어 거기 근무하는 직원도 이 토스트기를 그저 또 하나의 전시용 소품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 사무실에서 이 제품을 써본 첫 사용자가 되었다. 얼마 전 이 제품을 설치한 사람도 상자 안에 5ml 계량컵이 별도로 들어있는 걸 모르고 박스와 함께 버렸을지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가 누구이든 그 자체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인식하지 못하면 함부로 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누구든 쉽게 대하지 말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신중한 자세로 대하도록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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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밀러, 천년 동안 백만 마일
너무 재미있어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책. 도널드 밀러 지음, 윤종석 옮김, 천년 동안 백만 마일, IVP. 여기서 재미있다고 함은 웃기다는 것이 아니라 글의 내용이 새로운 생각을 촉발해서 머리 속이 다양한 생각으로 포화되는 느낌 같은 것이다. 이 책은 2012년에 선물 받았는데 한동안 책장에 꼽혀 있었다. 나는 선물 받은 책은 금방 읽게 되지 않는다. 선물 받았으니 예의상으로라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책을 읽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맛있는 것처럼 책도 읽고 싶은 느낌이 들 때 읽으면 만족감이 더욱 크다. 그러다가 기억은 나지 않는 어떤 계기가 있어 저자 Donald Miller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 책의 원서 A Million Miles in a Thousand Years를 먼저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 연말에 다시 선물 받았던 번역서로 읽는 중이다. 윤종석 님의 번역도 깔끔해서 읽기가 좋다. 스토리텔링이란 주제와 자신의 삶을 흥미롭게 엮어놓았는데 삶에 대한 통찰이 상당히 좋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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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얀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한국경제신문, p243) 키엘케고르의 글이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피터 드러커가 갑자기 언급한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춘갑 옮김, “그리스도교의 훈련“, 다산글방. 책을 펼치자 짤막한 저자 서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 한 문단을 옮겨 본다.
“그러나 이 요건은 반드시 고지되고 명백히 제시되고 경청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이 필수 요건을 에누리하거나–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고, 반대로–이 필수 요건을 묵살하는 일이란 용납되지 않는다.” — 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춘갑 옮김, “그리스도교의 훈련“, 다산글방, p11 ‘간행자의 서문’ 중에서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철학자의 글이라서 원래 이런 걸까 아니면 번역의 문제일까. 영어 번역문을 찾아 비교해 보고 싶었지만 다른 고전 문학 작품, 예컨대 톨스토이의 소설류와는 달리 그의 글을 인터넷 상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널리 알려진 죽음에 이르는 병 (영문)은 있었음.) 다행히 페이지를 넘겨 본문으로 들어가니 어렵긴 해도 적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서문이 유난히 어렵게 쓰였던 모양이다. 약 200년 전에 살았던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가 쓴 글을 내가 한 번에 이해한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하지만 글이 묘하게 끌린다. 이걸 다 읽고 나면 피터 드러커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길 기대하며 읽는 중. ]]> -
2016년 12월에 인상 깊게 읽은 책
공간의 세계사, 다산초당(2016) — 지리적 확장이라는 맥락에서 문명의 발전사를 요약한, 세계사 입문서 같은 책. 나에게 매우 유익했다. 특히 장거리 원정을 위해 말 여러 마리를 함께 달리게 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한 몽골인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앞으로는 “멀어서 어렵다”라는 말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영 지음, 격의 시대, 영인미디어(2016) — 영어로 옮기기도 어려운 “격”이라는 개념에 대해 잘 정리한 책. 신라호텔을 비롯해 여러 삼성 그룹 계열사에서 인사 관리 전문가로 근무했던 저자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교수로, 또 조직과 서비스의 혁신을 만들어내는 중심에 선 인물로 활동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송길영 지음, 상상하지 말라, 북스톤(2015) — 얀 칩체이스의 “관찰의 힘“처럼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한 책. 김대형 지음, 에이플러스 — 변화와 성장을 위한 5가지 열쇠, 더로드(2016) — 코치로 활동하는 지인이 낸 책. 이 책을 통해 그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가와카미 노부오 지음, 황혜숙 옮김, 콘텐츠의 비밀: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운 것들, 을유문화사(2016) — 지브리 스튜디오에서의 저자의 경험을 쓴 책일까 싶어서 읽었는데 그런 내용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콘텐츠의 속성에 대한 소논문 같은 책. 내용이 꽤 괜찮아서 다시 읽으려고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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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ux: 직장인들의 식후 커피의 의미
사무직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 값의 50%를 훌쩍 넘기도 하는 커피음료를 식후에 마시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의 사무직 직장인은 자신이 힘에 부치도록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오후에도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카페인 섭취가 정당화된다는 자기 암시 하에 금액 불구하고 커피를 마셔주는 것이다.
즉, 커피를 마시는 것은 직장인으로서의 자기 존재감을 스스로 확인하고 남에게 확인시키는 리추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행위는 “봐라. 나는 이토록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일을 하고 있다구”라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남들이 볼 수 있는 길거리에서 컵을 들고 다니는 것이 선언의 취지와 부합된다.
또한 많은 직장인들이 재활용 머그잔 대신 일화용 컵을 들고 다니다가 쉽게 버리는 것은 자기 직업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이며 더 나은 조건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옮길 마음이 있음을 무의식 중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2016년 4월 25일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다. 오늘 송길영 지음, 상상하지 말라, 북스톤(2015)를 읽다가 살짝 비슷한 관찰을 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그들이 식후 마시는 커피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라, 내가 아직은 주류사회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자랑하며 잠시 위안을 얻는 일종의 제례의식 ritual 같은 것이다.”
— 송길영, 상상하지 말라, 북스톤(2015), pp72-73내가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에 살짝 위안을 받았다고나 할까.
물론 직장인들의 커피 소비 행태와 관련해서 이 책의 저자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다각도에서 관찰하고 깊게 분석했다. 관찰을 통한 소비자 이해(customer insight)에 관해서 매우 실질적인 참고가 되는 책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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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al Award 2016
그대와 영원히”라는 노래의 2절 중에서 “무뎌진 내 머리에…” 가사가 떠오르는군요. 과거의 Annual Award를 되돌아 보며 느끼는 점은 당시만 해도 호감을 가졌던 물건들이 해를 넘겨 지속적으로 감동을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건이든 작품이든 오랜 세월 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아 고전(古典)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2016년에 선정된 것들도 해가 바뀌면 또 얼마나 쉽게 잊혀질지 알 수 없습니다. 오래 전 시편에 기록된 글이 떠오릅니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 시편 102:26-27그럼 올해의 Annual Award 2016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Person of the Year
우치다 타츠루(內田 樹)
어떤 계기로 그를 알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의 통찰과 글이 좋아서 국내에 번역서가 나오는 족족 기쁜 마음으로 줄기차게 읽고 있는 우치다 타츠루(內田 樹). 그를 2016년 올해의 인물로 결정했다.
우치다 타츠루는 젊어서는 번역회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고베여학원대학(神戸女学院大学)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자신이 세운 개풍관(凱風館)이라는 이름의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하류지향,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일본변경론(日本邊境論),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등이 있다. 워낙 많은 책을 써내는 인물이라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도 수두룩한데 덕분에 앞으로도 매년 몇 권 씩 번역되어 나올 걸 생각하니 두고두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즐겁다.
그의 저서는 주로 교육, 사회, 공동체와 연관된 주제를 다룬다. 그는 마치 아저씨들끼리 모인 편안한 자리에서 주절주절 떠드는 듯한 구어체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게스트와 식사자리에서 이뤄진 대담을 책으로 펴내는 경우도 많다. 이를 우리말로 분위기 적절하게 번역해 낸 박동섭, 김경옥, 김경원 등 국내 번역자들의 기여에도 감사한다.
우치다 타츠루는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공부하면서 유대계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에 심취했다. 그런 배경이 있어서인지 그는 일본인이지만 그의 사고 방식에서는 왠지 모르게 특정 문화를 대변하기 보다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저서가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에서 애독자를 모으고 있는 것도 이를 어느 정도 반증하는 듯. 반갑게도 최근들어 강연을 위해 한국을 종종 방문하고 있고 강연 동영상도 일부 제공되고 있다.
Books of the Year
[일러두기] 올해의 책 선정은 참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은 기억에 잘 남아 있는 반면 상반기에 읽었던 책은 대부분 잊혀졌기 때문입니다. 공평을 기하기 위해 최근 1-2개월 내에 읽었던 책은 가급적 선정 대상에서 제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두 주 전에 매우 감명 깊게 읽은 피터 드러커의 The Effective Executive가 올해의 책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은 이거다 싶은 대표적인 한 권을 정할 수 없어서 여러 권을 선정했습니다.
가게야마 도모아키 지음, 유미진 옮김, 천천히 서둘러라, 흐름출판
McKinsey & Company라는 회사에서 컨설턴트 경력을 쌓은 저자 가게야마 도모아키. 그는 잘 나가던 커리어를 접고 도쿄 변두리에 위치한 니시고쿠분지라는 한적한 동네에 쿠루미도 커피(Kurumed Coffee)라는 작은 카페를 운영한다. 이 카페 운영을 통해 구현하려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인데,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다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기가 왜 커피 주문시 도장 찍어주는 쿠폰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지를 설명한 것과, 호두 생산지와 제휴해서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알아서 깨먹으라고 호두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나도 카페에서 제공하는 쿠폰을 받지 않게 되었다. 비록 작지만 지속적인 습관의 변화를 일으킨 책이라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유자와 쓰요시 지음, 정세영 옮김,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한빛비즈
아버지가 운영하는 술집 체인점 경영에 엮이고 싶지 않아 온 힘을 다해 다른 길을 찾아 대기업에 안착한 저자 유자와 쓰요시. 그러나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와 함께 400억 원에 달하는 회사 빚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그가 부담하게 된다. 이후 약 16년에 걸쳐 그 빚을 갚아나가면서 겪은 진솔한 체험을 이 책에 실감나게 적어 놓았다. 눈 앞이 캄캄해 지는 난관을 절박한 심정으로 버텨낸 사람의 이야기. 누가 책 추천해 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책이라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
Ian Morgan Cron and Suzanne Stabile, The Road Back to You — An Enneagram Journey to Self-Discovery, IVP Books
온라인 자기계발 프로그램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Michael Hyatt가 강력히 추천해서 읽게 된 책. 에니어그램이라는 성격 분석 시스템을 소개하는 책인데 기대 이상으로 도움이 되었다. 에니어그램의 분석 방식에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닌 듯 하지만 어쨌든 이런 틀이 있음으로 해서 나 자신과 주변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성격 분석 설문에 따르면 나는 에니어그램 5번으로 나오지만 설명문을 읽어보면 9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고미야 가즈요시 지음, 정윤아 옮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력, 비전비엔피
나는 고등학교는 이과, 대학교는 공대를 나왔지만 수학 실력은 언제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을 평생 부끄럽고 아쉽게 여겨왔다. 적어도 교양 수준의 수학 실력은 있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에 종종 쉬운 수학 책을 기웃거리곤 했는데 마침 고미야 가즈요시가 지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력“이 내 수준에 딱 맞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자신감이 붙어 수학과 관련된 교양 서적을 줄줄이 읽게 된 것을 기념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디자인의 디자인, 안그라픽스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原 硏哉)의 여러 저서 중 대표작. 디자인과 감성에 대한 깊은 통찰도 인상적이지만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문장력이 남다르다는 점 때문에 도대체 이 사람이 디자이너인가 문학가인가 놀라워하면서 읽게 된다.
황윤정 지음, 디자인은 다 다르다 2, 미술문화
한국, 일본, 중국의 길거리에서 관찰되는 시각 디자인의 특징의 차이를 해석한 책. 한국은 감정, 일본은 감각, 중국은 상징(의미)로 키워드를 뽑아낸 통찰이 꽤 흥미로왔다. 문화권 간의 관점 차이에 대해 일년 내내 생각해 보도록 자극을 준 것을 기념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Gadget of the Year
Fiio X5 II
나는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는 아이폰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지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 애호가 한 분이 한국의 음향기기 회사 아스텔앤컨(Astell & Kern)의 고품질 오디오 플레이어가 좋다고 열정적으로 추천하시는 것이었다.
사실 아이폰도 나쁘지 않은데 고품질 오디오가 과연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의구심이 있었던 차에 중국의 Fiio–广州飞傲电子科技有限公司–라는 회사에서 만든, 가성비 갑인 고품질 오디오 플레이어인 Fiio X5 II를 접하게 되었다.
관능시험(sensory evaluation)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A보다 B가 낫다고 이야기한들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지만 어쨌든 이 제품을 들어보니 아이폰에 비해 확연히 좋다는 느낌이었다. 오래 듣고 있어도 덜 피곤했다. 아이폰이 “음악을 듣는” 것이라면 이 제품은 “좋은 소리를 즐긴다”는 느낌이랄까. 결론적으로 대만족. 얼마나 만족했냐 하면 한 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같은 제품을 구입할 정도였으니.
그렇다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이 기종을 가려낼 자신은 없다. 결국은 무슨 기종이 되었든 본인이 만족하며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듯.iOS App of the Year
Drafts
각종 IT 도구를 자신의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업무 효율화 방법을 공유하는 변호사로서 David Sparks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강력 추천하는 노트 기록 전문 앱 Drafts.
노트 기록 앱은 iOS 기본 앱도 있고 무료 앱도 많은데 굳이 유료 앱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사용해 보니 매우 유용하다. 예컨대 다재다능한 노트 앱 Evernote와 비교해서 가장 큰 특징은 앱을 띄우면 바로 입력 모드가 된다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떠오른 생각을 신속하게 기록하는 데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된다. 또한 일단 기록한 노트를 다른 앱으로 내보내는 기능이 훌륭하다고 David Sparks가 강조하고 있다. 나는 아직 일부만 써봐서 더 공부해 볼 예정.Music Album of the Year
Magnificat
노르웨이의 젊은 작곡자 Kim André Arnesen의 성가 합창곡 Magnificat. (자세한 이야기는 지난 2016년 1월 19일자 포스팅에.)
노르웨이의 음향 스튜디오 2L에서 2014년에 출시한 이 앨범은 고품질 음향을 강조하고 있어서 일반 CD로는 구할 수도 없고 SACD와 블루레이 디스크로만 판매하는데 다행히 iTunes 뮤직 스토어에서 디지털 음원을 구할 수 있어서 일 년 내내 잘 들었다.
앨범 중 대표곡 중 하나인 Et misericordia를 온라인 상에서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한 번 들어보시길.Bag of the Year
Timbuk2 Catapult Cycling Messenger Bag
평소 넉넉한 용량의 배낭을 메고 다녔는데 가방이 크면 넣고 다니는 것도 많아지기 마련. 조금이라도 가볍게 다니기 위해 작은 가방이 필요했는데 마침 발견한 것이 Timbuk2사의 Catapult Cycling Messenger Bag.
가방 구석구석마다 쓰임새를 좋게 만들고자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기본적으로는 찍찍이로 열고 닫게 되어 있지만 필요시에는 소음 없이 가방을 열 수 있도록 지퍼를 추가한 것이나 한 손으로 들기 좋으라고 손잡이를 세 군데나 추가한 것이 예다.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가방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에 더 호감이 가는 모델이다.
확실히 가방이 작으니 가지고 다니는 것도 줄어들어서 의도한 효과를 충분히 보았다. 국내에 수입된 Timbuk2 모델 중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Project of the Year
중국어 성경 필사
2016년도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를 새롭게 시도해 보았다. 절제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머리도 아주 짧게 깎아 보고, 유태우 박사의 반식 다이어트도 해보았는데 가장 오래 지속한 것은 중국어 성경 필사.
교회에서 일 년 간 성경 필사를 다 같이 해보자고 필사 노트를 구입을 독려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교회에서는 유명무실화된 듯 싶은데 어쨌든 나는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다 채울 때까지 거의 매일 한 장 씩 성경을 베껴나갔다. 기왕에 하는 것 중국어 공부도 겸해 보겠다는 의도에서 중국어 성경을 택했는데 결과적으로 한자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 과정이 매우 즐거웠다. 아마도 내가 시각형이라서 그런지도. 그나마 한 해 동안 한 것 중에 잘 했다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
간혹 완성한 필사노트를 기념으로 오래 간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는 없을 것 같았고, 갖고 있다보면 미련이 생겨 더 버리기 어려워 질 것 같아 바로 버렸다.Podcast of the Year
Generous Giving
대학원 은사 중에 Jeff Sandefer 라는 매우 특이한 교수님이 계셨다. 경제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기업가이면서 동시에 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수업을 가르치는 분이셨는데 수업 진행이 매우 진지하고 엄격했다. 나중에 들으니 학교와의 의견 충돌이 있어 교수직을 그만 둔 후 본인이 직접 Acton School of Business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스쿨을 세우셨다고. (헐. 대인배)
이 분이 뭘 하고 계실까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Generous Giving이라는 컨퍼런스의 강사로 참여했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Generous Giving 전체 컨퍼런스 강의 내용을 팟캐스트로 들을 수 있었는데 매우 유익했다. 한 해 동안 들은 여러 팟캐스트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Furniture of the Year
IKEA LACK TV 장식장
*사진 출처: ikea.com
IKEA LACK 시리즈의 TV 장식장은 비록 “TV 장식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다용도로 활용 가능하다는 면에서 대단히 유용한 물건. 원래 용도와 다른 활용 방안을 찾는 repurposing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가구가 매우 마음에 든다.
조립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책꽂이 겸 선반이 되기도 하고, 사무실 책상 아래에 놓으면 신발장 겸 수납용 선반이 되기도 한다. 조립할 때 중간 선반을 생략할 수도 있다. 이걸로 서서 일하는 스탠딩 데스크를 구성한 사람도 있다. 꽤 튼튼해서 걸터 앉는 벤치로 사용할 수도 있고, 두 개를 위 아래로 겹쳐서 설치할 수도 있다. (물론 쓰러지지 않도록 적당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색상은 흰색과 검은색. 개당 15,000원인 가격도 매력적이다.Food of the Year
Hummus
이태원에 위치한 중동 음식 전문점 Hummus Kitchen에서 맛본 후무스(hummus)라는 음식이 자꾸 생각나서 직접 만들어 먹었다. 주로 참고한 레시피는 Jamie Oliver와 Epicurious 두 곳.
병아리콩을 삶은 후 레몬즙, 올리브유, 볶은깨(*원래 tahini라는 소스를 넣어야 하는데 구하기 어려워서 tahini의 원재료인 깨를 직접 넣었다), 마늘, 쿠민(cumin)이라는 향신료, 소금 등을 넣고 블렌더로 갈아준다. 수분이 부족하면 너무 뻑뻑해서 제대로 갈아지지 않으므로 병아리콩 삷았던 물을 남겨뒀다가 적당히 넣어주는 것이 포인트.
그릇에 담은 후 파프리카 가루와 파슬리 가루, 올리브유를 위에 뿌려서 장식하면 끝. 코스트코에서 파는 Himalayan Pink Salt Lentil Chips를 이 후무스에 찍어 먹으면 매우 맛있다.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플레인 요거트를 섞는 것도 괜찮은 조합.Office of the Year
WeWork
나는 평소 사무 환경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소규모 스타트업에게 월 단위로 사무실을 빌려준다는 WeWork가 서울 강남에도 생겼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바로 연락해서 두 달 여 동안 입주 멤버가 되어 보았다. 뭘 하더라도 신중하게, 오래 검토하던 관례를 벗어나 이렇게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도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6인실 오피스의 한 자리를 사용해 보기도 하고 일인실 오피스도 사용해 보았다. 감옥의 cell을 연상시키는 좁디 좁은 일인실에 있어보니 집중은 잘 되는 반면 아쉬움도 많았다. 이 과정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사람은 혼자서 일하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피터 드러커가 The Effective Executive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조직 속에서 일함으로써 각자의 약점을 서로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결국 “일인기업“이란 성립되기 어려운 이상이라고 생각되었다.Search Keyword of the Year
A5 바인더, 이석증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본 블로그를 찾아 들어오게 되는 주요 검색어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는 ‘A5 바인더’와 ‘이석증’. 앞의 경우는 2011년에 몇 차례에 걸쳐 올린 A5 바인더 관련 포스팅에 몇몇 독자 분들이 링크를 걸어주신 덕분이다. 후자의 경우는 2013년도에 올린 ‘이석증 관련 포스팅‘ 때문인데 이 포스팅에 대한 외부 링크가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고 순수하게 구글 검색으로 찾아오게 되는 듯.
어쨌거나 두 키워드에 관심을 둔 이들에게 미약하나마 참고가 되면 좋겠다. 아무래도 A5 바인더에 관한 내용을 보강해서 새로 올려야겠다.Number of the Year
50
올해로 만 50세가 되었다.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큼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또 특별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서 올해의 숫자는 50으로 정했다.
Epilogue
2016년 4/4분기 이후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앞의 두 경우는 계정 자체를 폐쇄해 이전의 활동 기록도 없어졌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하루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는 반성 때문이었습니다. 노안이라 눈도 침침한데다가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 보는 습관 때문에 목과 어께도 아프더군요. 다만 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신속하게 접하던 국내외 뉴스와 단절되고 나니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 파악이 더욱 어려워지긴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데 말입니다. 이런 저런 아쉬움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습관들을 체계적으로 끊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피터 드러커는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저도 2017년에는 더 많은 단절을 실천해 보려 합니다. 내년부터는 “올해의 단절” 항목을 추가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어떤 리추얼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지네요.
그럼 내년에 또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이제까지의 Annual Award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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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piece
JLC Watch라는 시계 수리점에 가져갔더니 건전지에서 누액에 조금 나오기는 했지만 새 건전지를 넣었더니 잘 간다고. 차보고 시간이 느려지는 현상이 없다면 특별한 수리는 필요없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좋은 시계를 사주셨던 것이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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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스트레스
Designated Survivor (지정 생존자)를 넥플릭스를 통해 시청하는데 엄연히 만들어진 드라마이고 남의 일인데 장면 장면마다 마치 내 일인 것 처럼 잔뜩 긴장하면서 보고 있다.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었던 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고, 줄지어 일어나는 테러와 국내외의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정 생존자로서 살아남긴 했지만 저렇게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계속 시달려야 한다면 오히려 죽을 맛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