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soonuk2

  • Annual Award 2017

    기억의 이정표를 남기는 Annual Award 2017을 발표합니다.

    저는 Annual Award에 다음 세 가지의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1) 기억 (2) 추천 (3) 음미(appreciation). 제 기억력은 계속 나빠지는데 특히 시간의 흐름에 관한 기억이 안 좋아서 특정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잘 생각해내지 못합니다. 예컨대 어딘가 여행을 다녀온 것이 몇 달 전이었는지 몇 년 전이었는지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 해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 중 특별히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을 기록해 두려 합니다. 또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해에 발견한 추천할만한 물건이나 경험을 공유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접하는 생활 주변에서 그 해에 특별히 의미있게 경험한 의미를 음미해보고 기념하려 합니다.

    2017년은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 원래 예정했던 발표 일정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한꺼번에 다 올리지 못하고 시간이 나는대로 조금씩 추가하려고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올해의 Annual Award를 소개합니다:


    Milestone of the Year: The Passing Away of My Father
    2017년 9월 4일, 만 83세를 일기로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의 긴 여정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위로와 도움 속에서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아버지의 유해를 고향인 구미 선산에 안장하였습니다. 장례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저는 여전히 경황이 없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더 흘러야 이 시기의 의미를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례 기간 중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Book of the Year: 밥 고프, 사랑으로 변한다
    2017년 올해의 책은 밥 고프(Bob Goff) 지음, 최요한 옮김, “사랑으로 변한다(Love Does)” (아드폰테스 2012)입니다.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오디오북으로 읽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번역서로 읽었습니다. 저자에 대해서는 도널드 밀러의 책 “천년 동안 백만 마일“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변호사인데 모든 선입견을 뛰어넘는, 온갖 기상천외한 이야기의 연속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저는 유익하게 책은 ‘한 번 더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책꽂이에 꼽아두고, 재미있게 읽은 책은 읽고 난 책을 가까운 지인에게 건네 주고, 아주 특별한 책은 몇 권을 더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밥 고프의 『사랑으로 변한다』가 여러 권 사서 나눠준 책에 해당됩니다. 저에게는 그만큼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저자의 새 책이 2018년 초에 출간된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Runner-Up : 칼 뉴포트 지음, 김태훈 옮김, 딥 워크 (민음사 2017) – 지인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지적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도록 엄격하게 집중력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준 책입니다. 업무 중에 핸드폰을 꺼두는 등의 요령을 배워서 실천해 보았더니 확실히 생산성이 커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Future Candidates : Lewis Hyde의 The Gift와 William Bridges의 Transitions 도 강력한 후보작이지만 끝까지 읽지 못해서 이번 해에는 수상작으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Gadget of the Year: Bose QuietComfort 35
    소음제거(noise-cancelling) 헤드폰을 대표하는 Bose QuietComfort 시리즈는 십 여 년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워낙 가격대가 높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 5월, 미국 출장 중에 귀를 완전히 덮는 형태인 QC35를 과감히 구입하였습니다. 소음제거 헤드폰은 일정하게 반복되는 소음 진동을 상쇄시켜 비행기나 자동차 엔진 등의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리지 않게 해줍니다. 저는 용인과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 좌석버스에서 팟캐스트, 오디오북, 음악 등을 들을 때 이 헤드폰을 매우 유용하게 잘 사용했습니다.


    Project of the Year: 오르빛/Orbitt
    지인의 소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4개월짜리 교육 프로그램 콘텐츠테크랩의 “라이프디자인랩”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제공하는 여러 도구와 재료를 접해보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과 협업할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저는 랩마스터인 장영진 대표의 친절한 지도 하에 반응형 조명 장치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단일보드 마이크로컨트롤러인 아두이노에 가속센서 MPU-6050와 LED 유닛인 네오픽셀(neopixel)을 연결하고, 움직임에 반응하여 따뜻하게 이글거리는(flickering) 느낌의 불빛을 내고, 움직임의 지속 시간에 비례해서 불빛이 천천히 사그러지도록 프로그래밍하되 사용자의 신체성과 교감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만들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쥐불놀이를 전자적으로 재현하는 모양새였다가 점차 사진에서 보듯 궤도(orbit)를 따라 도는 행성인 토성(Saturn)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이 물건의 이름을 뭘로 할까 논의하면서 결국 『오르빛(Orbitt)』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짓고 나서 찾아보니 “오르”는 히브리어로 “빛”을 뜻한다고 하네요.

    Runner-up :Board Essentials 번역 – 평소 비영리단체의 경영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던 차에 국제CBMC 활동을 오래 하신 한 분이 David L. Coleman이 지은 Board Essentials라는 책의 번역을 맡겨주셔서 한 달 여에 걸쳐 번역했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어 출판은 요원해 보이지만 덕분에 이사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그 원리를 배울 수 있어서 무척 유익했습니다.


    TV Program of the Year: Designated Survivor
    미국 ABC방송사에서 2016년 9월에 방영을 시작한 서스펜스 드라마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를 무척 즐겁게 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TV를 즐겨 보지 않아 집에 케이블TV조차 신청하지 않고 있는데 오로지 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 서비스에 가입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연두교서 발표장에 테러가 일어나 국무위원 중 한 사람만 남기고 모두 사망하는 바람에 생존한 국무위원인 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대통령이 되어 온갖 난국을 수습해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Fox 네트워크사의 서스펜스 드라마 『24』의 주연 배우 Kiefer Sutherland가 주연을 맡았는데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극중 인물들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해결하려는 상황에서 가족과 관계된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설정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실감이 납니다.

    Runner-Up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일명 “알쓸신잡”) – 다방면에 교양이 풍부한 출연자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식사 중에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2017년 동안 아내가 매우 즐겨 보았던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덕분에 국내 여행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Everyday Goods of the Year: Disposable Plastic Gloves
    짐을 옮기거나 청소를 할 때 손을 지켜주는 매우 유용한 폴리에틸렌 재질의 일회용 위생장갑을 올해의 일용잡화로 선정했습니다. 메이커나 브랜드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일반 상품(commodity)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값이 더 나가는 제품이 잘 찢어지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습니다 (특히 3M 브랜드가 질깁니다). 위 사진에서 보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경우 70매 들이에 1000원이므로 좌우 한 짝에 약 30원 꼴입니다. 손을 긁힘, 오염 등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때문에 부엌, 차량, 사무실 책상 등에 비치해 두고 잘 사용했습니다.


    Museum of the Year: 온양민속박물관
    원래 12월에 경험한 내용은 Annual Award에 잘 선정하지 않지만 온양민속박물관은 워낙 좋은 경험을 선사하였기에 특별히 올해의 박물관으로 선정했습니다. 이 박물관을 나타내는 키워드는 “탁월하고 세련된 정보 디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 백과사전을 편찬한 바 있는 계몽사의 김원대 회장이 1978년에 세운 이 박물관은 전시 주제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개별 전시품에 대한 공들인 설명이 남다릅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친구에 따르면 아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면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을 방문하고 얼마 후에 한 지방자치단체의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후자의 경우에서 “컨텐츠의 빈곤”이란 어떤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설립 배경이 다른만큼 서로를 저울질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보의 디자인을 어떻게 하면 더 좋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자극이 된다는 의미애서 두 박물관을 비교해 본 것이 유익했습니다.


    Online Service of the Year: Instagram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습관을 반성하면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한동안 사용하지 않고 지내다가 인스타그램은 다시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한번 삭제했더니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기존 아이디를 가져가 버렸더군요. 그래서 아이디를 @soonuk.jung 으로 바꾸어 다시 시작했습니다. 소셜네트워크를 그다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2017년 동안 집중적으로 사용한 것이 인스타그램이어서 올해의 온라인 서비스로 선정했습니다. 특히 손으로 쓰는 플래너 사례를 실컷 볼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Runner-up :Youtube – 벅스뮤직이나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오래된 앨범, 그리고 C. S. 루이스, 피터 드러커, 벅민스터 풀러와 같은 존경하는 저자들의 육성 녹음이나 강연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서비스입니다.


    Dish of the Year: 우래옥 본점의 김치말이냉면
    가까운 어른의 초대로 을지로에 있는 우래옥 본점에서 김치말이냉면을 먹어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깔끔한 참기름 냄새가 감도는 동치미 국물이 일품입니다. 양도 많습니다. 우래옥 메뉴 대부분은 내용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만 김치말이냉면만큼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특히 냉면 밑에 밥이 깔려 있음을 알았을 때의 느낌은 뭔가를 덤으로 받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반찬으로 나오는 겉절이와 무채도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훌륭한 맛입니다.


    Cafe of the Year: Add Coffee
    제가 커피가 특별히 맛있다고 느끼는 카페는 대략 세 군데인데 그 중 2017년 Cafe of the Year로 Add Coffee 라는 이름의 카페를 선정하였습니다. 같은 프릳츠 커피 원두를 사용하더라도 이 가게에서 내놓는 커피는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제 입맛에는 프릳츠 커피 본점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인테리어도 특별하고 매장에서 직접 구워내는 브라우니도 맛이 깊습니다. 마침 우래옥 바로 옆에 있습니다.


    Podcast of the Year: Typology Podcast
    에니어그램을 소개한 책 Road Back to You (역서: 이안 모건 크론, 수잔 스테빌 지음, 강소희 옮김, 『나에게로 가는 길』, 두란노 2017)의 저자 이안 모건 크론이 진행하는 본격 에니어그램 전문 온라인 대담 프로그램 Typology Podcast가 올해의 팟캐스트입니다. 1번부터 9번까지, 각 에니어그램 유형에 해당하는 손님을 초대하여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각 유형별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Epilogue
    2017년에는 뜻깊은 우연한 만남(serendipity)이 특별히 많았습니다. 연관된 분들의 실명을 밝히기는 곤란하므로 Serendipity of the Year 항목은 제 마음 속에만 간직하려 합니다.

    2018년에는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제까지의 Annual Award는 다음과 같습니다:

    1. Annual Award 2017
    2. Annual Award 2016
    3. Annual Award 2015
    4. Annual Award 2014
    5. Annual Award 2013
    6. Annual Award 2012
    7. Annual Award 2011
    8. Annual Award 2010
    9. Annual Award 2009
    10. Annual Award 2008
    11. *Annual Award 2005-2007는 파일을 분실했음
  • [quote]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 2015), pp13-14[/su_quote] 마치 전쟁의 기록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

  • [quote] 엔도 이사오, 성과의 가시화

    ‘사회’는 타고난 머리나 눈치, 직감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세계가 아니다. 당연히 항상 공부를 계속해야 하며, 그 노력을 게을리하면 프로로서 실격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 엔도 이사오 지음, 김정환 옮김, 『성과의 가시화』(다산북스 2013), p76

    순발력으로 버틸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

  • [quote]모리타 마사오, 수학하는 신체

    ‘안다’는 경험은 뇌 안, 또는 육체 안 보다 훨씬 넓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그럼에도 자연과학이 이성을 특별히 강조해서 심적 과정의 모든 것을 뇌 안의 물질현상으로 환원하려고 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은 좁은 곳에 갇혀버렸다’고, 오카 키요시는 한탄한다.

    — 모리타 마사오 지음, 박동섭 옮김, 『수학하는 신체』 (에듀니티 2016) p137

    도이 에이지 지음, 이자영 옮김, 『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 (비즈니스북스 2017)에서 책을 꼭 많이 읽어나 끝까지 읽는 것보다 책에서 단 한 문장이라도 배울 점을 찾고 그것을 통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그래서 모리타 마사오(森田真生, 1985년생)의 『수학하는 신체』에서 인상 깊은 구절 하나라도 적어 놓으려 한다. 이 책에서는 지식 또는 정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물리적 실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 한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한편, 이 책을 이전에 한번 읽은 것 같기도 한데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처음 읽는 것이거나 아니면 치매 초기 증상이 나에게 있는 것이거나. — 아마도 예전에 이 책을 읽으려고 구입했다가 못 읽고 놓아두었는데 그 사이에 다른 일본인 저자의 수학 교양 도서에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오카 키요시에 관해 읽은 것 때문에 혼동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싶다.

  • 실행하는 습관에 대해서

    구글에서 “day of the year”를 검색하면 오늘이 한 해의 몇 일 째 되는 날인지를 알려줍니다. 오늘은 11월 9일인데 한 해의 311 번 째 날입니다. 벌써 한 해의 85%(311/365)가 흘러갔습니다. 시간을 흘려보낸 후에 절감하는 아쉬움 중 하나는 “기회가 없던 게 아닌데 왜 하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입니다. 의도와 계획은 그럴싸했는데 막상 이뤄놓은 것은 보잘것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마감 직전에서야 서두르다가 어설픈 결과로 끝낸 경우가 제게는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돌이켜 보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시간에 뭐라도 저질러 보는 편이 훨씬 더 생산성이 높았을 텐데 하는 반성을 합니다. 그래서 서글픕니다. 어떻게든 도움을 얻고 싶어서 성과와 행동 습관의 관계를 다룬 몇몇 책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참고 도서 목록은 아래에 있습니다.) 이들 책에서 권하는 업무의 요령은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라 — 관심을 한 곳으로 집중(focus)하기 위해서는 간섭요인의 단절(shutoff)이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칼 뉴포트의 “딥워크”에서 이 점을 강조합니다.
    2. 압도적인 속도로 추진하라 — 압도적인 속도로 신속하게(rapid) 진행하라고 합니다. 나카지마 사토시의 “또 일을 미루고 말았다”에서는 첫 20%의 시간에 업무의 80%를 완성하라고 조언합니다.
    3. 대략적인 형태를 목표로 진행하라 — 완결(perfection)이 아닌 대략적인 모습(draft, prototype)를 우선 만들어 놓고 진행하도록 권합니다. 도요다 게이치 지음 “생각과 행동 사이”에서는 “졸속(拙速)이 지완(遲完)을 이긴다”라는 손자병법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 점을 강조합니다. (*과연 손자병법에서 정말로 이런 말을 했을까 의구심이 들어 찾아봤는데 “지완(遲完)”이란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저에게 한 선배님이 이런 조언을 주셨습니다: “너무 잘 하려고 하기 보다 해치운다는 수준으로 해보고 버텨보세요.” 저에게 딱 필요한 조언인 것 같습니다. 운동이든 발표든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려우니까요.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전환율을 높이기 위해 우선 연말까지 다음과 같이 적용해 보려 합니다:

    1. 일할 때 핸드폰 끄기 = 해당 업무에만 집중
    2. 침대에서 핸드폰 안 보기 = 휴식에 집중
    3. 매번 새로 시작하지 말고, 80% 정도 완성된 기본 양식(template)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시작점으로 만들기

    참고 도서:

    1. 칼 뉴포트 지음, 김태훈 옮김, “딥워크
    2. 나카지마 사토시 지음, 양수현 옮김, “또 일을 미루고 말았다
    3. 장성규 지음, “심플리스트
    4. 도요다 게이치 지음, 고경문 옮김, “생각과 행동 사이
  • a quick note on books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마음산책 2017) 미국의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1927년생)과의 대담을 글로 옮긴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다. 그래서 같은 저자(시모어 번스타인)의 “자기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도 읽고 싶다. 2.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주영사 2009 지식경영에 관한 저서로 유명한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1935년생)를 비롯해 여러 저자가 함께 펴낸 책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부제: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를 몇 해 전에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책의 원제가 “실패의 본질(失敗の本質)“이라는 사실을 어제 알게 되었다. “실패의 본질”이라는 제목은 참 매력적이다. 다시 읽고 싶다. 일본 아마존에서 살펴보니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의 최신 저서로 “지적기동력의 본질 — 미국해병대의 조직론적 연구” (2017년 5월 출간)란 책이 있다. 세상에, 제목도 어쩜 이렇게 읽고 싶도록 짓는지.]]>

  • 자기계발서와 탕자의 귀환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존경하는 분의 추천으로 웨인 다이어 지음, 오현정 옮김, “행복한 이기주의자“(원제 Your Erroneous Zones), (21세기북스 2013)를 읽는 중이다.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지만 평소 상당한 자기규제(self-regulation)의 틀에 자신을 묶어놓고 살아온 나로서는 이 책의 주장을 소화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su_quote]”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자기사랑을 통해서다. 스스로를 중요하고 소중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일단 자기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인식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게 만들면서 내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 웨인 다이어 지음, 오현정 옮김, “행복한 이기주의자” (21세기북스 2013) p45[/su_quote] 그래서 과연 그러한가 생각하면서 읽고 있는 중에 어쩔 수 없이 탕자의 비유가 자꾸 생각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생각할수록 오묘하다. 실제로 이 이야기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인물이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도 아니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버젓이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나눠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엄청난 파격임을 팀 켈러는 그의 저서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원제 The Prodigal God)”에서 지적하는데 이 아들은 사회의 통념을 깨고 진정한 자기주도적 선택을 실현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삶의 절박한 상황에 맞닥뜨린 둘째 아들이 우연히 발견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아, 나는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구나!”라고 깨달은 후, 긍정적인 신념을 품고 집에 돌아가 “아들이 돌아왔어요!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값진 경험을 한 거예요.”라고 당당히 선언해서 해피엔딩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을 어쩌다가 성과창출에 실패한 패배자(loser)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죄인(sinner)으로 규정했다. 면목도 자격도 없지만 그래도 일이라도 시켜줘서 먹고 살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구걸하러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또 한가지는 아들로서의 도리와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공동체를 떠나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온갖 유흥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당시 부정한 동물로 여겨졌던 돼지를 키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사회 밑바닥까지 내려간 패배자, 낙오자, 낙제인생인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사회적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이를 뛰어넘는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끌어안았다는 점이 인상 깊다. 아버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몇몇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긍정적인 자기인식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스토리 상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성숙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반면 그동안 사회의 질서와 기대를 존중하면서 집에서 성실하게 노동에 힘쓰며 과도한 소비도 참고–파티? 그게 뭐예요?–절제의 삶을 살았던 맏아들은 돈을 챙겨 집을 나간 동생을 가슴깊이 경멸한 만큼이나 그런 자식을 조건 없이 받아줄 뿐더러 후하게 대접한 너그러운 아버지에 대해서도 원망과 경멸의 마음을 품었다는 점은 비극이다. 관대함이 항상 관대함을 낳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su_quote]”그래서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므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 누가복음 15:31-32 *현대인의 성경[/su_quote] 그가 그토록 속좁은 사람이 된 것은 과연 공동체의 규범과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까닭일까? 그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무엇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마땅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가 자기 자신만을 너무 집착하듯 사랑한 나머지 아버지고 동생이고 다 필요 없고 자신이 더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매몰되어 버린 걸까? ]]>

  • 서비스 디자인의 타산지석

    WeWork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비슷한 점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왠지 처량해 보이는 편의시설(amenities)을 둘러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전자레인지를 대략 160-170cm 정도 높이에 둔 것이었습니다.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을 때 회전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이는 상당히 위험해 보였습니다. 안내하시는 분께 이 점을 언급하자 설계상 다른 곳에 놓을 자리가 따로 없어서 어쩔 수가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과도기여서 임시로 이렇게 한 것이고 나중에 바꾸려고 한다고 했으면 모를까, 그냥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II.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꽤 이름 있는 회사를 방문하여 대형 회의실에 들어섰는데 흉한 모습으로 말라 죽어가는 화분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부터 시들시들했던 기억으로 미뤄볼 때 아무도 돌보지 않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사진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꽤 볼썽사나운 광경이었습니다. 저를 회의실로 안내한 리셉션 직원에게 이 사실을 언급하자 어쩌라고 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당황해서 그랬을 거라고 좋게 해석하고 싶지만 그걸 왜 자기에게 말하느냐 하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참고로 이 회사와의 관계에서 제가 고객 입장입니다. 결국 다른 직원이 와서 “이걸 치워달라는 말씀이신가요?”라고 굳이 저에게 물어본 후 가져갔습니다. III. 모 대기업 계열의 보험회사 고객 창구를 방문했는데 탁자 바로 위에 사진에서 보는 안내문이 버젓이 붙어 있었습니다. 서비스 품질 확인을 위한 설문 전화가 걸려올 때 최고 점수를 달라는 요청입니다. 일종의 심리적 닻내림(anchoring) 효과를 기대하는 것일까요? 서비스 현장에서 이런 메시지를 흔히 마주하지만 이런 상황이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경영진을 포함해 조직 전체가 이런 낯부끄러운 아이러니에 동의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식당에서 “누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맛있었다고 말해주세요”라고 손님들에게 부탁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 – – 위의 사례 모두, 서비스 전체에 비하면 매우 작은 부분에 해당합니다. 관리자와 현장 직원 각자 자기 업무에 바쁘다 보면 고객 입장에서 보이는 사소한 것들은 간과하기가 쉽습니다. 아마도 고객이 알 수도 없는 더 큰 내부 문제로 저마다 골머리를 앓느라 이런 작은 요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빈틈없는, 높은 수준의 서비스는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한편, 제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이 과연 어느 정도나 만족하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모두 점잖은 분들이어서 좋게 표현하시니 행간을 읽어낼 만큼의 센스가 부족한 저로서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가 어렵습니다. “매우 만족”보다 솔직한 피드백이 저는 더 좋습니다. #호의적인돌직구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