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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l in the blank

컨설턴트는 문제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걸 해결하고자 달려들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제럴드 M. 와인버그의 “컨설팅의 비밀“이란 책에 적혀있다.

문제를 풀고 싶어 안달인 컨설턴트들에게 “고객이 요청하지 않은 문제는 풀려고 하지 말라”고 와인버그는 조언하고 있다.

Problem Solver가 되려고 하는 경향은 디자이너나 엔지니어에게도 발견되는 성향인 듯 싶다.

만 45세를 하루 남겨둔 상황에서 되돌아보건대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이 간과하여 놓친 부분을 보완하고 완결시키려는 태도, 즉, 다른 사람의 빈칸을 채우려는 자세를 견지해 온 듯 싶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글의 오타는 잘 놓치면서도 다른 사람이 쓴 글의 오타는 쉽게 찾아내고 조직과 시스템의 미비한 점, 특히 사소한 디테일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고치는 것을 보람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향후의 리더쉽은 스스로 problem solver가 되려는 자세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최근 느끼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여 그들이 problem solver가 되도록 상황을 디자인해주는 리더쉽이 더욱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자기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혼자서 완결시키기 보다는 일정 부분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어 누군가가 기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fill in the blank”(*)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중년(中年)”의 변화를 겪으면서 예전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몸소 느끼는 가운데 결국 많은 중요한 일이란 혼자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하기 보다 여럿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함께 이뤄나가는 것도 보람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있는 셈이다.


*”Fill in the blanks” 디자인의 사례 1

작년에 어느 교회의 주보를 디자인하면서 첫 페이지 전체를 기록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간혹 주보에 설교 내용을 적는다든지 아니면 설교와 아무 상관없는 낙서를 하는 경우 얼마 되지 않는 빈틈에 우겨넣듯이 써놓는 경우를 자주 보았기에 이러한 잠재된 필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필기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놓는 시도를 한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 주보의 첫 면은 교회 건물 이미지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건물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아예 첫 면을 여백으로 남겨놓으므로써 그 주보를 완성시키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개념이 담겨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Fill in the blanks” 디자인의 사례 2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창의적 활동을 즐기는 타입의 사람이라면 액자를 선물하는 것도 방법이다. 액자는 그 안에 사진을 넣어야 완성되는 것이기에 액자를 선물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fill in the blanks”의 과제를 주는 셈이다. 단, 상대에 따라 사진을 끼워넣는 수준의 간단한 활동조차 버거운 사람도 있기 마련이므로 그런 사람에게는 사진까지 끼워서 선물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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