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기 선생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나는 평소 편집 디자인에 관한 관심이 있었는데 많은 디자이너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편집 디자인의 예로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이라는 잡지를 거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잡지 레이아웃 디자인에는 이상철 선생이라는 분이 관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상철 선생의 이야기 (+ 강연 동영상)도 무척 재미있는데 그 배후에 있는 잡지의 발행인 한창기라는 분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소문이 있어 관련 도서를 오래 전에 구입해 두었다가 최근에서야 읽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 한창기 선생은 남달리 예민한 미적 감각을 가졌고 언어의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또한 시각적으로도 무척 예리하여 잡지 발행시 약간의 오류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성을 추구했다. 행여 오타가 있을까봐 매월 발행되는 잡지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았다.
그는 잡지 발행 이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판매하는 회사의 사장이었고 설득과 세일즈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고유의 토박이(민속) 미술품에 대한 애착이 많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미술품을 소장했다. 여러가지 면에서 스티브 잡스와 성격이 비슷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아쉽게도 61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아 그에 관한 책이 사후에 여러 권 발행되었다. 그가 한국 출판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비범한 인물이었던 반면 그가 작고한 이후에 일어난 (또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잡지 샘이깊은물은 그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간된다. 그 이유는 한창기 선생에 필적할만한 발행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본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수집했던 많은 미술품들은 고인의 이름으로 박물관을 지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진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박물관 진행이 난항을 겪게된 배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 없으니 괜히 넘겨짚어 상상하는 이야기를 쓰지 않으려 한다. 다만 훌륭한 인물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가 다 이루지 못한 일을 다른 누군가가 계속 이어 진행시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여곡절끝에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2011년 순천에 개관되었다고 하니 방문을 해봐야겠다.
한창기 선생이 살아있는 동안 남긴 생각과 활동의 결과물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도전을 주어 알게 모르게 새로운 발전을 촉진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