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케네디는 1960년대 안에 달 착륙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언론들은 즉각 비난을 시작했다. 그들은 도심 속의 슬럼가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말이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할란 클리블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책임지지 않는 사회, 보이지 않는 리더, 비즈니스맵, pp167-16820세기의 위대한 연설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케네디의 “달 착륙” 연설에도 이런 이면이 있었는지 몰랐다. 모든 원대한 비전에는 어쩔 수 없이 비난과 불평이 뒤따르는 것인가? 이에 비춰볼 때 정치의 세계에서 여당이 어떤 발표를 하면 야당이 비난을 쏟아내고, 야당이 어떤 성명을 내면 여당이 이를 비판하는 행태를 보면서 “무슨 사람들이 서로 남의 발목이나 잡고 이러냐”하고 한숨짓기 보다는 정치란 원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부모들은 온갖 종류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힌다. 부모가 세운 지침과 원칙에 대해 아이들은 왜 그래야 하느냐,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것을 원한다 등의 다양한 논리와 억지로 응수하며 아이들이 사춘기 나이에 접근할수록 그 강도는 더 세지고 수법은 다양해진다. 이 때 부모는 처음에 세운 방침을 고수할 것인지, 아이들의 압력에 밀려 어느 정도 타협할 것인지 수없이 고민한다. 때로는 뒤늦게 타협하려니 부모로서의 권위와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자신의 비전을 정말로 믿는다면 어떤 비난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면서 때로는 완고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비전의 본질일까? 아니면 아무리 자신의 비전에 대해 확신하더라도 비판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타협을 보면서 비전을 수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리더십일까? 나름대로 이 문제를 정리해 보자면, 조직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부분에서의 비전과 원칙에 대해서는 내부의 저항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부수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필요하다면 수정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한다. 사실 무엇이 결정적이냐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