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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의 의미

“우리는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먼저 증여함으로써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축복의 말을 듣고 싶다면, 우선 내가 먼저 ‘당신에게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먼저 증여하는 것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니까요.”

—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 북뱅, p292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버린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그 속뜻은 “이번 한 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당신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하는 일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상대방을 향한 축복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 덕담을 먼저 줌으로써 관계가 이어지고 공동체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자립은 ‘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의 수를 늘림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고 나는 썼습니다. ‘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우린 필시 ‘당신이 앞으로 계속해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축복의 말에는 반드시 똑같은 축복의 말이 돌아옵니다. 덕담에 대해서는 반드시 덕담으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략]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의 무궁한 건강과 행복을 간절하게 기원합니다’라는 덕담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말로 응답하는 것이 인류학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 같은 책, p291

이제서라도 인사에 이런 뜻이 있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인사말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문자적으로는 별다른 뜻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다는 것은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다고 우치다 타츠루는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에 관한 책에서 적고 있다.

“‘인사’를 보내는 것은 ‘파롤이란 선물’이 ‘당신’에게 보내지지 않고, 보내져도 묵살된다는 ‘리스크’를 미리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자신의 취약한 옆구리를 우선 ‘당신’에게 드러낸다. ‘당신’은 나를 상처입힐 수 있다. 나는 ‘당신’에 의해 상처받을 수 있다고 알리면서, ‘인사’는 보내진다.”

—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수정 옮김,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갈라파고스, p74

다른 식으로 풀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남에게 덕담을 건넬 때 상대방도 덕담으로 응답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간혹 상대방에게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정중하게 인사했는데 상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형식적으로 답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연하장이나 명절선물을 보내도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 조차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넨다는 건 자존심과 감정에 상처받을 가능성이 포함된 모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먼저 인사를 건네려면 대담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다. 썰렁한 반응을 받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남에게 기꺼이 축복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새해를 맞이해야 겠다.

“만일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너희가 더 나을 것이 무엇이냐? 심지어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도록 하여라.”

— 마태복음 5:47-48 (쉬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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