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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 thy audience (2)

전편에 이어 청중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몇 년 전의 일인데 우리나라의 10대 로펌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내가 가르 레이놀즈 지음, “프리젠테이션 젠“의 번역자라는 이유 때문에 연락을 준 듯 싶은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일이 많은 변호사들이 종종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하고 있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 같으니 효과적인 프리젠테이션 디자인에 대한 내부 교육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신기해 하면서 로펌의 대표 변호사분과 만나서 짧게 나마 이야기도 나누고 실무자와 몇 차례 미팅도 가졌지만 당시에 내가 진행하고 있던 기존 프로젝트와 시간적으로 중복되어 내가 책임지고 맡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분야에 있어 실무적인 내공이 나보다 훨씬 깊고 뛰어나신, 파워포인트 블루스의 저자 demitrio님께 이 기회를 넘겨드리고 마무리지었다.

당시에 그 일을 내가 자신있게 맡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은 내가 변호사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문과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전형적인 공돌이 출신이고, 가까이 지내는 지인 중에 변호사라고는 딱 한 명 뿐인데 그나마 그의 직업 세계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다. 청중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는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고 서로 피곤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내려면 일정 기간 동안 그쪽 사무실에 출입하면서 변호사들의 진정한 니즈를 발견할 수 있는 리서치 기회를 확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못했다.

다시 비슷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저 변호사들의 실제 프레젠테이션 발표 방식과 자료 작성 과정 등을 일정 기간 동안 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관찰을 토대로 변호사라는 직업에 절실히 필요한, 적절한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의 핵심을 추려내 변호사들 고유의 사고방식과 프로세스에 맞는 대안을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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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 thy audience

*독자분들께 드리는 특별 부탁* 이 포스팅의 코멘트 란에 간단한 자기 소개와 소감을 남겨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름이나 구체적인 소속은 밝히지 마시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와 본인의 관심사, 그리고 이 블로그에 대한 느낌과 아쉬움과 기대가 있으시다면 이를 간단히 적어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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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독서의 신 (원제 多讀術)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독서의 신“, 추수밭(2013). 이 책은 원제가 “다독술(多讀術)“인 책을 2010년에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라는 제목으로 펴냈다가 다시 2013년에 “독서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 출판한 것이다. (도대체 왜?) 저자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에 관해서 예전에 찾아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데 어떤 계기로 찾아보았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하다. 아마도 무슨 디자인 잡지에서 언급된 것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진 저자의 이야기를 질의응답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일본 문학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내용은 ‘책은 두 번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

“분명히 이전에 읽었는데도 그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책이 너무나 많았어요. 책의 내용을 설명할 수 없거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일부만 기억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엉뚱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책을 두 번 이상 읽기로 한 것입니다. ‘그게 뭐였더라?’하고 아리송해서 다시 읽어보면, 전에 읽었는데도 마치 전혀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때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책은 두 번 읽지 않으면 독서가 아니다’라는 완고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요.”

—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독서의 신“, 추수밭(2013), p27

나만 책 읽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구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은데 과연 책을 두 번씩 읽을 수 있을까? 편집공학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저자 마쓰오카 세이고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답게 독서와 관련된 통찰이 남다르다.

“독서란 어떤 옷을 골라 입는 것과 비슷합니다. 독서는 패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죠.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매일 갈아입는 옷에 가깝습니다.”

— 같은 책,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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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마이크 몬테이로 지음, 디자이너, 직업을 말하다

마이크 몬테이로 지음, 박준수 옮김, “디자이너, 직업을 말하다” (웹액츄얼리코리아 2014). 원제는 Design is A Job인데 번역판 제목도 적절하게 잘 지었고 본문 번역도 맛깔스럽게 잘 되었다. 이 책은 디자이너로서 비즈니스 현실 속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직설적인 조언을 적은 책이다. 특히 돈과 관련된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적들이 흥미롭다.

“절대 공짜로 일하지 마라. 그런 일은 돈 받고 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당신에게나 고객에게나 이로운 상황이 아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돈을 적게 받고도 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황이라면, 할인된 가격에 일을 해라. 하지만 견적서를 보낼 때는 당신이 받는 가격을 먼저 적고 그 밑에 할인 가격을 적어라. 당신이 해주는 일의 가치를 고객이 정확하게 알도록 해야 한다.”

— 마이크 몬테이로 지음, 박준수 옮김, “디자이너, 직업을 말하다” (웹액츄얼리코리아 2014), p69

고객사를 찾아가서 하는 설명회가 끝난 후에 유념해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해라. 악수를 하고 음료수 잔도 함께 치워라. 고객은 내버려두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기꺼이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라. 적어도 부모님께서 당신을 참 잘 키우셨다는 소리는 들을 거다.”

— 같은 책, p152

행동이 예의바르면 부모에게 영광이 되는구나. 그만큼 삶의 기본이 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기초예절은 어린 시절에 익히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기 어렵다는 뜻인지도. 저자는 시간관리의 ‘연출’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당신이 한가하다는 인상을 고객에게 심어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번 프로젝트에 12주를 책정했다 치자. 고객이 아는 한, 당신에게 비어 있는 시간은 없어야 한다. 이 일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다른 프로젝트를 했고, 일을 마친 직후에도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정신없이 바쁜 모습을 보여주란 얘기다. 실제로는 일이 없다 해도 말이다.”

— 같은 책,pp 132-133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면 발표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마치 다른 약속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신속하게 떠나는 편이 좋다는 어느 책에서의 조언이 생각난다. 저자는 웹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이 책은 온갖 다른 종류의 디자이너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무척 실감나게 읽었다.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에게 추천.

이 시리즈의 9번째 책인, Erica Hall 지음 Just Enough Research(미번역)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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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고바야시 아키라, 폰트의 비밀 2

간혹 자신이 가진 특이한 성격을 닮은 사람을 만나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영국에서 서체 디자인을 공부한 후, 독일에서 영문 서체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저자 고바야시 아키라(小林 章)의 책 “폰트의 비밀 2″(이후린 옮김, 예경, 2014)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가졌다.

“저는 어느 나라를 가든 먼저 글자에 대한 흥미가 생깁니다. 관광지에 가는 것보다 글자를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을 정도라서 신기합니다.”

— 고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후린 옮김, “폰트의 비밀 2″(예경, 2014), p5

이 책은 저자가 주로 유럽을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서체를 유심히 관찰하며 느낀 바를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책이다. 생활 주변의 다양한 형태와 패턴의 사진을 모아 그 일상적인 특이점을 소개한, George Nelson의 책 How to See와 비슷한 점이 있다.

나와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의 삶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그동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의 실체를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책의 저자가 독일어를 배울 때, 함께 공부하던 동유럽 출신 학생들보다 말하기는 잘 못하지만 단어와 스펠링 만큼은 자신이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언어를 습득할 때 귀나 입으로 배우는 사람과 단어의 형태를 보고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시각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단어의 형태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스펠링을 잘 틀리지 않고 만약 틀렸다고 해도 단어의 형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서 고칩니다. 이것이 서체 디자이너가 스펠링을 틀리는 실수를 별로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 같은 책, p7

나는 오랫동안 번역과 편집일을 하면서 영문 오타를 비교적 빨리 찾아내곤 했는데 어째서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이 책을 통해 파악하게 되었다. 나도 시각적으로 배우는 사람인가보다. 경영학계의 전설적 인물 피터 드러커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999년 3-4월호에 기고한 Managing Oneself 라는 유명한 글에서 ‘탁월한 관리자가 되려면 자신의 학습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각적인 사람이 듣기만 해서는 잘 깨달아지지 않고, 청각적인 사람이 책만 읽어서는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배울 때 가장 효과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지를 알아야 시간 낭비를 줄이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외과 의사인 Ben Carson도 의대 진학 후 성적이 나빠서 고민하던 중 자신은 강의를 듣는 것보다 책을 읽을 때 이해력이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수업은 빠지고 대신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드는 방법으로 공부해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바야시 아키라는 자신이 시각형임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래서 저는 제 방식대로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 위의 책, p7

그래서인지 이 책 “폰트의 비밀 2″에는 저자가 직접 촬영한 흥미로운 사진이 가득하다. 서툰 문장으로 길게 설명하기 보다 예시가 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 장황한 글보다 사진으로 승부를 건 셈이다. 그런 점이 나에게는 반갑게 와닿았다.

나는 이 책을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시각적 감수성이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지루한 책이 될 수도 있다. 서체의 생김새의 특징에 대한 비교와 설명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에 대해 보는 이에 따라서는 ‘획의 끝이 둥글거나 각지거나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거지?’하고 답답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는 것이니,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각적 감수성을 보다 잘 활용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참고 링크: 고바야시 아키라(小林 章)의 블로그: http://blog.excite.co.jp/t-director/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