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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ma Goldcrest (Monterey) Cypress

동네 꽃가게에서 “율마”라고 부르는 Wilma Goldcrest 화분을 구입. 영어 이름으로 골드크레스트 윌마라고 부르는데 왜 “율마”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상큼하고 달콤한 향이 약하게 나는데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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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epitaph)

“자신의 묘비 문구를 아직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작성해 보라. 인생 후반부에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의미있는 유산을 물려주는 일, 즉 무언가 가치 있는 것들을 후세에게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 밥 버포드 지음, 이중순 옮김, 40 또 다른 출발점 (원제: Game Plan), 북스넛, p17

참고로 묘비명은 영어로 epitaph라고 한다. “famous epitaphs“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여러 유명 인사의 묘비명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 묘비명은 “내 우물쭈물하다가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로 번역되어 회자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랫동안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일어날 줄 알았지”가 더 적절한 번역에 해당한다고.

한편 우리나라 묘비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특히 익살스러운 묘비명을 적은 경우는 거의 없을 듯 싶다. 전통적으로 ‘어느 지역 출신 누구의 묘’라고 쓰고 출생일과 사망일, 그리고 유가족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우리나라 묘비 문구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요즘은 화장하는 경우가 많아 “묘비”를 덜 사용하게 되었으니 실질적으로 묘비명을 대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내 생각엔 묘비명도 좋지만 좀 더 길고 자세하게 적는 부고 기사문(obituary)을 미리 써보는 것도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 보는 좋은 훈련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블로그도 굉장히 길게 써내려가는 중인 부고문의 일부라고 생각해도 될 듯.

참고로 미국의 소설가 Norman Mailer는 1979년에 자신의 부고 기사문을 스스로 적어 발표했다. 물론 웃자고 한 것이지만. 그가 실제로 세상을 떠난 것은 2007년.

서양의 장례식에서는 추도문(eulogy) 낭독 순서를 종종 보게 되는데–직접 본 적은 없고 영화를 통해 보았을 뿐이다–개인적으로는 고인이 어떤 분이었고 그 분의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가졌었는지를 조문객들이 함께 마음 속에 생각해 볼 수 있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유명 인사의 추도문을 소개한 The Atlantic 기사) 삶이 있어야 묘비명도 쓸 수 있다.

– – – –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유골함(urn)의 디자인도 변화가 필요한 듯 싶긴한데 대다수의 유골함이 그렇게 생긴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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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박상윤, 선한 영향력

“고객들은 내가 똑똑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게 멍청할 정도로 충성하는 것을 바란다. [중략]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내 인간성이다. 믿을만한 사람인지, 같이 비즈니스를 하면 마음이 편해질 사람인지, 믿고 오랫동안 같이 파트너가 되어도 좋을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 박상윤 지음, 선한 영향력, 북셀프, p167
이 책은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사업가로서 중국에서 18년 넘게 일해 온 박상윤 사장의 이야기다. 자서전의 성격상 자신의 성공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존경스러운 점, 배울 점이 많아서 “뭐야, 자기 자랑이잖아?”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가의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사람을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실감나는 사례를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중국 비즈니스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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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구마 겐고 지음, 나, 건축가 구마 겐고

나는 의사가 쓴 글과 디자이너가 쓴 글을 좋아한다. (디자이너에는 건축가도 포함된다.) 의사가 쓴 글에는 자신의 책임과 사명에 대한 진지함과 함께 복잡한 현상 속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관점이 묻어나서 좋다. 한편 디자이너의 글–물론 글을 잘 쓰는 디자이너에 국한되지만–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현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꿰뚫어보는 깊은 통찰이 드러나서 좋다. 구마 겐고라는 일본의 건축가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판형과 형태로 출간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라는 책을 워낙 재미있게 읽은 터라 같은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듯 적어내려간 글이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그리고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업하면서 건축가로서 바라보는 시대의 흐름과 세계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무척 유익하다.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위해서도 물론이지만, 후세에 남을 건축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한정된 시간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엄격한 시간 운영과 큰 책임이 생깁니다.” — 구마 겐고 지음, 민경욱 옮김,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안그라픽스, p298
위의 인용구는 번역이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건축가의 사명이 단지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고 설계수수료를 챙기는 차원이 아니라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게 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 작업을 대하는 자세가 느슨하거나 막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나에게도 귀감이 된다. 책 속에는 저자가 시대의 트렌드를 보는 긴 안목도 소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누비며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전문가로서 나름대로 터득한 생활의 요령과 같은 세부적인 항목도 심심찮게 등장해서 묘미를 더한다.
“이만한 여행이라도* 짐은 기내에 가지고 들어가는 가방은 하나입니다. 만일 수트케이스를 가져갔다가 공항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그 이후의 여정이 엉망이 되니 절대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짐으로 어떻게 여행할지에 대해서는 복장을 포함해서 이미 연구를 마친 상태입니다.” — 같은 책, p26 (*약 2 주간에 걸쳐 베이징, 홍콩, 미얀마, 파리, 에든버러, 뉴욕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출장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읽고 있어서 즐겁다”라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본문 이후에 이어지는 ‘나가는 글'(편집자 기요노 유미), ‘감수의 글’ (임태희), ‘옮긴이의 글’ (민경욱)을 보면서 마지막까지 정성을 들여 만든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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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웨스턴 안도, Simple 회계공부법

“경영자는 경영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을 선호한다.” — 웨스턴 안도 지음, 오시연 옮김, Simple 회계공부법, 새로운 제안, p149
세무회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저자 웨스턴 안도. 본명은 안도 요시치카(安藤惠哉 1964년생)인데 서부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웨스턴 안도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안도세무회계사무소” 외에 “웨스턴컨설팅“이라는 회계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쓴 世界一わかりやすい会計の本 (“세계 최고로 알기 쉬운 회계책”)을 번역한 것이다. 중소기업과 연관된 세무회계의 기초 개념을 간추려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위에 인용한 것처럼 경영과 관련된 통찰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중소기업에서 필요한 세무회계 지식은 대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에게는 유동비율, 재고회전기간이니 하는 등의 세세한 내용을 다루는 경영분석은 실질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한다.
“대기업이라면 몰라도 중소기업은 경영분석을 한다 한들 문제를 개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매입처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중소기업이 분석수치를 개선하기 위해 고객이나 매입처와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절대 못한다. 그래서 경영분석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같은 책, p26
이 책을 통해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동일한 경제적 원칙의 지배를 받고는 있지만 실제적인 생존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르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업 규모에 따른 생존방식의 차이점은 때로 중소기업에게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와 실무자는 그 차이점을 잘 활용하는 기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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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알프레트 브렌델, 피아노를 듣는 시간

“이 책은 고령에 이른 내가 그동안 음악, 음악가, 내 일에 대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간추려 엮어낸 것입니다. 문학을 나의 두 번째 업이라 여기는 까닭에 최대한 간단하게 표현하되,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게는 쓰지 않도록 스스로를 부추겼답니다.” — 알프레트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 피아노를 듣는 시간, 한스미디어, p9 (‘들어가는 말’에서)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 1931-). 그의 저서 “피아노를 듣는 시간“은 피아노와 연관된 주요 단어를 알파벳 순서대로 저자의 관점으로 풀이한 사전(glossary) 형식의 수필이다. 평생을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저자가 81세가 되는 2012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이 책 속에서 인생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한 작품이나 악장의 특성은 거의 대부분 첫 시작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음악일수록 더욱 그러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그 곳의 매력을 알아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연주자의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요?” — 알프레트 브렌델, 같은 책, p17 (‘시작’ 항목에서)
각 사람마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무언가–자신이 신봉하는 가치 또는 소속된 조직–를 나타내고 대표하는 연주자라고 생각한다면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낼 때에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겨보게 만든다.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무대에 올라와서 “부족하지만 잘 봐주세요”라고 어설프게 굽신거리면서 청중의 관대함에 기대기 보다 철저하게 준비된 상태로 청중을 맞이하도록 스스로를 단련해야 하는 것은 음악 연주자 뿐만 아니라 자신을 프로페셔널이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첫 음부터 마지막 음에 이르기까지 작품 전체를 인도해가는 작곡자의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그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 알프레트 브렌델, 같은 책, p203 (‘연관성’ 항목에서)
저자는 연주자와 작곡자의 관계라는 문맥에서 위의 글을 썼지만 이 내용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2:9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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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ization: the cure for looping behavior in a verbally-oriented organization

Looping and What It Means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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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keep a comfortable distance from the things of this world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 고린도전서 7장 31절 위 구절에서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라는 말씀이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성경의 의역판에 해당하는 The Message에서는 그 앞 구절을 포함해서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I do want to point out, friends, that time is of the essence. There is no time to waste, so don’t complicate your lives unnecessarily. Keep it simple—in marriage, grief, joy, whatever. Even in ordinary things—your daily routines of shopping, and so on. Deal as sparingly as possible with the things the world thrusts on you. This world as you see it is on its way out.” — I Corinthians 7:29-31 (The Message)
영어라서 그런지 여전히 확실하게 와닿지 않아서 다시 The Message 우리말 번역본을 찾아보았다.
“친구 여러분, 나는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 여러분의 삶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결혼생활이든,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을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지 단순하게 사십시오. 쇼핑 같은 평범한 일을 할 때에도 그렇게 하십시오. 세상이 여러분에게 억지로 떠맡기는 일은 가급적 삼가십시오. 여러분도 보다시피, 이 세상은 소멸해 가고 있습니다. — 고린도전서 7장 29-31절 (메시지, 복있는 사람 간)
번역본을 읽어도 여전히 와닿지는 않는데 이 본문의 내용을 나름대로 이해한 바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 일에 완전히 몰두해서 힘을 소진하거나 이 세상의 물건으로부터 모든 가치를 바닥까지 다 뽑아내려고 집착하듯 애쓰지 말고 그저 사용할 기회가 주어진 기간 동안 느긋한 마음으로 사용하다가 적당한 때에 홀가분하게 손을 놓을 수 있는 여유있는 태도로 살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마지막까지 다 내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꼭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 수는 있지만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는 원리를 생활 속에 조금씩 적용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 몇 가지 소박한 예를 적어보았다.
  1. 공책이나 수첩을 마지막 장까지 쓰려고 하지 말고 몇 장 빈 공간이 남았을 때 다른 공책으로 바꾼다.
  2. 음식이 아깝다고 배가 부른데도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지 말고 차라리 남긴다. (물론 처음부터 조금만 받아오는 편이 훨씬 낫다.)
  3. 무슨 일이나 물건이든 “아까운데 조금 더”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 바로 포기한다.
  4. 옷, 가방, 가구 등은 아직 한참 쓸만할 때 아름다운가게나 자선단체 등에 기증한다.
  5.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전면 유리가 깨지거나 물 속에 빠뜨려 기능이 일부 고장나더라도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적절한 보호커버를 씌워주고 조심해서 다루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6. 농촌에 사는 친척으로부터 농산물을 선물로 받으면 그날 즉시 이웃에게 일부를 나눠준다.
  7. 자녀가 아이스크림이나 핫도그를 먹다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단지 아깝다는 이유로 야단치지 않는다.
  8. 투숙한 호텔 세면대에 비치된 샴푸, 칫솔 등 일회용품을 “어차피 다 돈 낸 건데”라고 생각하며 싹쓸이하듯 챙겨오는 행동을 중단한다.
  9. 영화를 보러 갔는데 진정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에서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다 올라갈 때까지 좌석에 앉아있는 습관을 그만 둔다.
  10. 놀이공원에 가면 본전을 뽑겠다는 심정으로 발바닥이 아픈 것을 참아가며 폐장시간이 될 때까지 돌아다니겠다는 결심을 내려놓고 남들보다 먼저 귀가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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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culture robust?

창발(emergence)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개미 군집이 집을 지을 때 각 개미에게 개별적으로 작업지시서가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참조할만한 설계 도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로 부지런히 흙조각을 옮기면서 개미집을 완성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벌의 경우도 마찬가지.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일을 하는 것일 뿐인데 어떻게 대규모의 결과물이 나타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수많은 사람들로 이뤄진 인간 사회가 만들어내는 문화에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국가나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문화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특정 삶의 방식이나 관습에서 독특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크게는 국가 수준에서, 작게는 회사나 가족처럼 작은 단위에서도 그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문화를 만들어내고 개인은 그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문화의 속성은 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군집 수준에서 창발된다. 그리고 창발된 문화의 속성은 그 구성원을 지배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과연 창발 현상으로서의 문화는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가, 또는 얼마나 끈질기게 바뀌지 않는가이다. 그리고 창발 현상의 속성상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접근 방법은 과연 무엇인지 작은 단서라도 찾아내고 싶다. 간혹 이스라엘의 벤쳐 산업이 융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기탄없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그들의 문화를 언급하는 경우를 본다. 다른 문화의 사례를 교훈 삼아 자신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사례 연구는 매우 유익한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따라할 수 조차 없는 사례라면 오히려 좌절감과 열등감을 불러 일으킨다. 수 세기에 걸쳐 장유유서의 가치를 문화 깊숙히 받아들인 한국 사회가 이스라엘의 수평적인 의사소통의 문화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조직 문화 개조 노력의 한 사례로, 기업 내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위해 직급 호칭을 모두 “매니저”로 통일한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 규정의 변화가 문화로 정착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무척 궁금하다. 만약 창발적 특성이 본질적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가 창발 현상으로서의 문화의 문제를 대하는 방법이나 관점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곰국은 원래 오래 끓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조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듯이 문화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면 훨씬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에 적합한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문화의 속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5개년 계획”으로는 어림도 없고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친 계획이 필요할 수 있다. 문화가 전혀 다른 국가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방법론을 전수하려는 시도에 있어서도 성급한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임기 내에” 해결하겠다는 공약은 문제의 속성을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수 백년에 걸쳐 다듬어진 문화가 한 세대 만에 바뀔 수 있을까? 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바뀌는 부분도 있고 어지간히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다. 어떤 문화는 한쪽 방향으로는 쉽게 바뀌는데 비해 다시 반대방향으로의 변화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컨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붙어서는 행동패턴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정착되었다. 급하게 이동하려는 이들을 위해 왼쪽 공간을 비워두기 위해 그런 행동패턴을 유도한 것인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승객 안전을 위해 좌우 양쪽에 모두 서서 타는 방식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문제는 원상태로 되돌리는 게 의외로 어렵다는 것. 왜 그런 것일까? 이런 문제를 생각하려 하면 머리 속이 엄청 복잡해지는데 시간을 두고 계속 공부해보려 한다. – – – 관심 질문:

  1. 창발 현상을 거스르거나 역행하는 구성 요소를 군집은 어떻게 다루는가? 조직은 조직 내에서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구성원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관대할 수 있는가? 문화적 이질감이 수용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참고: 소수집단)
  2. 조직의 ‘경직된 분위기’는 창발 현상의 일종인가? 전반적으로 경직된 조직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개인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3. 개인의 행동 습관(버릇)도 창발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4. 한가지 패턴으로 굳어지는 수렴적 창발이 있다면 계속 패턴이 달라지는 확산적 창발이 존재할 수 있는가?
  5. 디자인을 통해 창발 현상의 방향이 긍정적으로(혹은 부정적으로) 바뀐 사례에는 무엇이 있는가?
  6. 문화를 A 방향으로 바꿔보려고 시도했는데 전혀 의도치 않게 B방향으로 결과가 나타난 사례에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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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cker Slice of Time

넥스트(2007)에서 주인공 크리스 존슨은 2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능력으로 마술쇼를 벌이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2분이라는 두께의 현재를 살아가는 셈이다. 영화 넥스트의 주인공처럼 명확한 예지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매 순간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것에 약간의 생각을 할애한다면–예를 들자면 특수요원이 유사시에 어느 출구로 도망갈지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것처럼–그 사람의 현재의 두께는 그만큼 두꺼워질 수 있다. 생각의 용량이 남달리 큰 사람이라면 몇 분 앞 뿐만 아니라 몇 년 앞까지도 미래를 내다보고 다양한 가능성을 미리 상상해봄으로써 대응방법을 사전에 확보해 놓을 수도 있다. 위기대응전략이론에서는 발생 가능한 위기상황을 사전에 상정해보고 대응방법을 미리 생각해 보거나 대피훈련 등을 반복해 본 사람은 실제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응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한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그 누구도 알 수는 없지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상상은 꼭 미래학자가 아니더라도 생각해 볼 수는 있는 것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의식 속에 질질 끌고 다니기도 한다. 방금 전에 꺼낸 말을 곱씹어보며 후회하거나 벌써 몇 개월, 몇 년 전에 일어나서 이미 상황이 종료된 일을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고 힘들어 하기도 한다. 그 사람의 현재는 그만큼 두꺼워져 있는데 그 두꺼워진 방향이 과거로 향하고 있을 따름이다. 미래와 과거에 대한 생각의 부담 없이 아주 얇은 현재의 순간만을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단기기억력이 약해진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한편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라도 과거의 일에 괘념치 않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매 순간 일어나는 그 상황에 반응하면서 아주 얇은 시간의 조각(thin slice of time)의 연속을 살아갈 수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시편 131편 1-2절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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