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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st camera is the one you have with you

누구와 어디서 먹은 커피와 쿠키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두 장의 사진. EXIF 정보 상으로는 약 8년 전인 2009년 1월 8일에 찍은 걸로 나온다. 당시만 해도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았었나보다. 따뜻한 색감이 유난히 마음에 드는 사진인데 카메라는 DSLR이 아니라 똑딱이 카메라 중 하나인 Canon IXUS 80 IS라는 점이 인상 깊다. “가장 좋은 사진기는 지금 당신 손에 들린 사진기(the best camera is the one you have with you)”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다른 표현으로 옮기면, “장비 탓을 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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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ue One: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 부여

壯觀)인 영화 Rogue One: A Star Wars Story를 봤습니다. IMAX 3D로 보아 더욱 근사했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주요 줄거리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있습니다] — 이 영화를 네 글자로 요약하면 “다 죽는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안 보이게 했습니다. 컴퓨터에서 마우스로 긁으면 보입니다.) 두 글자로 요약하면 “대의(大意)” 영화에서 등장 인물들은 맞서 싸울 것인지, 흩어져 숨어 지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합니다. 압도적인 세력에 맞서 무모한 죽음을 맞이하느니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 이들은 그동안 반군으로 활동하면서 극단적인 일조차 마다하지 않은 것도 다 대의(cause) 때문인데 그 순간에도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대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죽고 싶어서 싸우러 나가자는 말이 아니고 자신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의 별’과 싸워야만 더 많은 이들이 살 수 있게 되므로 그것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인간은 짧은 기간 동안 유한한 인생을 살고, 언젠가는 죽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생명의 이유라면 이를 뒤따르는 불가피한 죽음의 현실은 그 의미를 무위화(nullify)하는 거대한 힘입니다. 그래서 행성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Death Star가 죽음을 상징한다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가오는 죽음의 현실 앞에서, 어차피 죽을지언정 삶과 죽음의 이유, 즉 대의를 찾으려는 선택을 합니다. (‘허무한 죽음 앞에서의 의미의 추구’라는 점에 있어서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메시지와 유사합니다.) 더 많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싸움을 선택한 이들도 대의를 추구했고, 무모하게 맞서 싸우기 보다는 일단 흩어져 생존을 도모하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주장한 이들도 나름대로의 명분을 내세웠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취지이지만 굳이 대의와 명분을 구분해 보자면, 대의(大意)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에 해당되는 한편, 명분(名分)은 구실(excuse)에 가깝습니다. 결국, ‘나는 왜 이것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의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를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참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강의 동영상) *그나저나, 제국군은 K-2S0 같이 뛰어난 성능의 드로이드(droid)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가격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쓰러져 버리고 다시 일어서는 일은 거의 없으며 사격 실력도 형편 없는 스톰트루퍼 부대를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합니다. 제국군 고위직에게 “많은 부하를 거느리는 맛”을 느끼게 하기 위한 인센티브로서 보유하는 걸까요? 혹은 식민지로 삼은 행성의 사람들에게 취업 기회를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일까요? 또는 영화를 만든 이들이 작품 구성상 유머 요소로 쓰기 위해 개그 역할을 맡긴 존재들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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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도 놀이는 필요하다

업무와 관련해서 상대의 진지하지 못하고 느슨한 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 “장난하냐?” 얼마나 짜증이 나면 그렇게 말할까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난을 칠 수 있어야 친해진다”라는 말도 있고 밥 고프(Bob Goff)도 “기발하고 엉뚱한 장난스러움”을 뜻하는 whimsy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아 장난 그 자체가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리라.

권오진 지음,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예담 2015)를 읽으면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 아빠가 놀아주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에 돌아오면 창의력(creative juice)은 바닥나고 체력도 소진되어 그저 쉬고만 싶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낮시간에는 창의력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 오래 전부터 창의력이 고갈된 상태로 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청소년들의 사교육비의 경제적 규모가 크다는 이야기를 종종하는데 그것이 우리 나라의 경쟁력을 어느 정도는 뒷받침을 하겠지만 그에 비해 놀이와 관련된 문화 자본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게 아닌가 싶다.

카페, 학원, 책방, 장난감 가게, 이 네 종류의국내 점포 수를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동시에 어른들의 삶에도 더 많은 놀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기왕이면 천박하지 않은, 건전하고 창의적인 놀이와 장난스러움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른들끼리 또는 마음 맞는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노는 놀이보다, 또는 혼자서만 즐기는 개인화된 놀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풍성한 놀이의 문화 자본이 형성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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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n There, Done That

터키 이스탄불의 유명한 이슬람 사원, 일명 ‘블루 모스크’라고도 하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Sultan Ahmed Mosque)다. 영화 007 Skyfall에서 배경으로 나온 것을 인상 깊게 보았는데 마치 비눗방울처럼 돔이 서로 겹쳐져 있는 구조가 기막히다. 직접 가서 보면 느낌이 어떨까 궁금하다. 얼핏 보기에 느낌이 비슷한 건물인 하기아 소피아와는 돔 아래 모양이 다르게 생겼다. 아마도 부모님께서 2007년 여름 경, 어떤 단체 여행으로 다녀오신 듯 싶은데 이런 곳까지 가셨는 줄은 몰랐다. 그래도 사진을 찍으셔서 그곳에 다녀 오셨다는 단서를 남기셨으니 다행이다. 문자 그대로 인증(認證)샷인 셈. 그 누구든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특별한 곳에 다녀왔다면 적어도 사진을 남기든지, 다녀온 감상을 공유하는 것이 그 방문을 더욱 뜻깊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돌아보는 패키지 여행의 경우 다녀와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그 경험을 공유하기에는 보고 들은 것이 비교적 단편적이어서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갖추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여행지에서 찍어온 사진도 너무 많으면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다. 혹 의미 있는 몇 장만을 골라내지 않고 시간 순으로 다 보여주면 보는 사람도 이내 지친다. 결국 “나는 이런 곳에도 갔다 왔다네”하며 오직 다녀왔다는 사실 만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기 쉽다는 점이 아쉽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상의 편린(片鱗)이든, 며칠 동안 겪은 여행의 경험이든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면서, 동시에 적절한 의미 부여를 하면 가까운 이들과 공유하는 과정이 더욱 풍성해진다. 기왕에 출장이나 여행을 간다면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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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짚는 것은 소용 없다

The Road Back to You podcast 를 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에니어그램을 다룬 책 The Road Back to You를 쓴 두 명의 저자가 각 에니어그램 번호에 해당하는 손님을 한 명씩 초대해서 대담을 나눈다.

오늘 들은 내용의 출연자는 조 색스턴(Jo Saxton)이라는 여성. 에니어그램 8번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나이지리아 출신의 런던 사람(a Nigerian Londoner)”임을 꼭 밝혀달라고 했다. 발음은 전형적인 영국식 발음에 겉모습은 키가 훤칠한 나이지리아인이고 현재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여성 목사다. 게다가 “도전자형”인 에니어그램 8번. 겉모습 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굉장히 다양한 속성의 조합이었다. 난 이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마침 이 podcast의 제목이 “Being Judged Before You Are Known“–알기도 전에 미리 판단 받는 것에 대해서–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를 겉모습 만으로 어떤 사람이려니 넘겨짚는 것이 아무 소용 없는 일임을 실감했다.

이 프로그램을 듣고 나서 갑자기 세계 주요 국가의 여성 지도자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은 정치인이지만 각자의 사정은 저마다 다를 테니까.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 세 사람의 위키피디아 항목을 살펴 봤다. 정치에 관한 내용보다 개인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몇 가지 요점:

  1.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Theresa Mary May, 1956~)를 만나면 아이가 몇 명인지 물어보지 말자. 36년 전인 1980년에 금융업에 종사하는 필립 메이와 결혼했는데 건강 상의 이유로 아이를 가지지 못했으니 말이다. 차라리 그녀가 신고 있는 신발에 대해 멋지다고 한마디 해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녀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2.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 1954~)에게 남편 Mr. Merkel은 잘 지내냐고 물으면 곤란하다 (로이터 기사 “Don’t call him Mr. Merkel” 참조). 그녀의 첫 남편 Mr. Ulrich Merkel과는 이미 34년 전에 이혼헀고 지금의 남편은 양자화학을 전공한 Dr. Joachim Sauer 교수다. 메르켈 총리 역시 아이를 가지지 못했고 Dr. Sauer이 전 결혼에서 낳은 두 아들이 있다. 그녀는 축구를 무척 좋아한다고.
  3. 미얀마의 국가자문역 겸 외무부장관 아웅산 수지 여사는 두 살 때 아버지가 암살 당한 후 두 오빠와 함께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정부에서 일하던 어머니를 따라 인도에서 살다가 대학은 영국애서 다녔다. 언어 재능이 뛰어나 미얀마어,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4 개 국어를 한다고. 미얀마에서 오랜 기간 가택구금을 당했는데 그 기간 중 멀리 떨어져 있던 남편이 암으로 사망했다.

물론 이런 걸 읽었다고 그들에 대해 안다고 할 수는 없다. 혹시라도 이들을 만난다면–누가 알겠는가. 정말 만날지도–어설프게 아는 척하거나 넘겨짚지 말고 그냥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듣기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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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어느 날, 중학 2학년 나이의 딸이 초코파이 포장지에 쓰인 한자를 읽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情: 뜻 정)

난 내 딸의 한자 능력이 그런 수준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거나 어이없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내 자식을 포함해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이 한자를 그렇게 많이 아는 것은 아닐 수 있겠구나 라고 담담하게 느꼈을 따름이다. 자기가 안다고 모르는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것은 곤란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도 모르는 게 많다. 특히 최근에 내가 모른다는 걸 인식하게 된 몇 가지:

  1. 우리나라 언론에서 “국정농단”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어 매체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가? 모르겠다.
  2. “국정농단”을 한자로 쓸 수 있는가? 앞의 두 글자는 쓰겠는데 나머지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3. “국정농단”의 뜻을 풀이하면 무엇인가? 대략 “나라의 운영을 갖고 장난친다” 정도가 아닐까 추측되는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이런 걸 모르는 나 자신이 부끄럽거나, 모른다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아차린다는 건 중요한 발견이다. 시험을 쳤는데 20 문제 중에서 15 문제를 맞추고 5 문제를 틀렸다면 시험 점수가 75점이라는 것보다 틀린 다섯 문제에서 물어보는 내용을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을 음미(appreciate)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뭘 모른다는 걸 인식하는 것과 그것에 대해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별개의 문제다. 국정농단이 무슨 뜻이고 한자로 어떻게 쓰이든지 몰라도 당장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궁금하면 답을 찾아보는 쪽이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아래에 적어 놓았다.

국정농단에 대한 답

  1. 국정농단 사건을 영어 매체에서는 어떻게 표현할까? 이 표현을 그대로 영어로 옮기기는 어렵고, 뉴욕타임즈 기사를 참고로 해보면 이와 유사한 문맥에서 사용되는 표현은 대체로 “extortion and abuse of power“, “corruption scandal“, “influence-peddling scandal” 등으로 사건의 성격을 풀어서 설명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이 중에서도 “influence peddling (wikipedia)“이 국정농단의 의미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다.
  2. 국정농단을 한자로: 國政壟斷
  3. 국정농단의 뜻: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의진 님의 글‘고은글씨’ 블로그에 상세하게 풀이된 내용에 따르면 “壟斷”이란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깎아지듯 높은 언덕이라는 뜻. 그리고 국정농단이라 함은 “보통 공익을 추구하는 공사(公事)를 사익을 위해 자기 맘대로, 사사로이 주물렀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이 표현은 맹자(孟子 公孫丑 下篇 10章)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단다.

틀렸다. 내가 크게 잘못 짚었다. 국정농단은 ‘국정을 가지고 논다’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어설프게 아는 체 하다가 망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전혀 모르는 편이 낫다. 어쨌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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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요즘 읽고 있는 책, 마이클 하얏트, 대니얼 하카비 지음, 소하영 옮김, “인생 계획(에스파스 2016, 원제: Living Forward)에서, 인생의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첫 단계에서 다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다: [su_quote]"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당신의 인생에 대해 무엇을 기억할까?" -- 마이클 하얏트, 대니얼 하카비 지음, 소하영 옮김, "인생 계획(에스파스 2016), p81[/su_quote] 마침 내가 좋아하는 작가 우치다 타츠루의 블로그 2016년 12월 31일자 포스팅 “2016년의 10 대 뉴스” 중 자기 형의 죽음에 대해 적은 부분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 내용 중에서 우치다 타츠루가 기억하는 형의 이야기 일부를 옮겨 본다. [su_quote]"두 살 위 형 우치다 도오루(内田徹)가 8월 11일 암으로 죽었다. 작년 말인 12월 1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가까운 가족이 2 년 연속으로 세상을 떠난 셈이다. 아버지, 어머니, 형까지 고인이 되어, 한 때 "우치다씨 집안"을 이뤘던 구성원 중 남은 것은 나 한 사람 뿐이다. 시모마루코(下丸子) 동네의 그 자그마한 집에서 벌어졌던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이제 나 한 사람 밖에 없고, "이런 일이 있었잖아"하며 기억을 확인해 볼 상대가 이 세상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나마저 죽는다면 그 집에 관한 기억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가족이 죽는다는 건 그런 일이라는 것이 뼛속 깊이 사무쳤다. [중략] 우린 무척 사이가 좋은 형제였다. 나는 처음부터 "형과 히라카와군(*어릴적부터 친구로 지낸 작가 히라카와 가쓰미(平川克美)를 말함)"을 독자로 생각하고 글을 써왔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난 후에는 "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써달라"는 조건 하에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이 두 사람의 비판을 견뎌낼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썼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영화든 사업이든 정치에 관해서든 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형이 "이거 좋네"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로 믿었다. 그걸 믿고나서 나중에 "틀렸잖아"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su_quote]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가까운 이들로부터 어떻게 기억될지 무척 궁금하다. 하지만 그걸 확인할 길은 없겠지. 마이클 하얏트와 대니얼 하카비는 사후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자신의 추도사를 직접 써보라고 권한다. 그 내용을 블로그에 공개하기는 쑥스럽고 혼자 조용히 작성해 보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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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Bob G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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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고프, 사랑으로 변한다 (Love Does)

“기발하고 장난스러운 엉뚱함”이란 뜻을 가진 whimsy라는 단어가 무척 잘 어울리는 인물 밥 고프(Bob Goff). 그가 쓴 책 Love Does (번역서: “사랑으로 변한다“, 최요한 옮김, 아드반테스 2012)를 읽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경이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것도 예화나 비유보다 저자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룬다.

원서 제목 Love Does에서 강조하듯, 사랑은 행동하는 것임을 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행동 가능한 범위”랍시고 막연하게 그려놓은 삶의 경계선(boundary)이 얼마나 찌그러져 있는지를 실감했다. 뭐가 되고, 뭐는 안 되고 라고 관념적으로 자신을 제한하는 생각은 대담하고 도전적인 실행 앞에서는 무의미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밥 고프에 대한 이야기 한 가지: 밥 고프가 Love Does라는 책을 내면서 맨 뒤에 공간이 남길래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 연락하라고 자기 휴대 전화 번호를 적어 놓았다. 그래서 걸려오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에 달한다고. 그런데 밥 고프는 전화가 걸려오면 자동응답기로 돌리지 않고 무조건 받는 것을 삶의 규칙으로 삼고 있어서 밤낮으로 전화가 걸려 오고 그걸 매번 받는다고 한다.

실제로 한 인터뷰 촬영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 모습을 유튜브 동영상(A 2nd Grader Interview With Bob Goff)에서 볼 수 있다. #추천


참고:

*GenerousGiving.org podcast 페이지에서 Bob Goff의 45분짜리 강연 mp3를 내려받을 수 있다.

*Bob Goff의 facebook 페이지 *Bob Goff가 대표로 있는 Restore International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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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밀러, 연애 망치는 남자(Scary Close)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걸쳐 읽은, 미국의 작가 도널드 밀러의 최신작 연애 망치는 남자(최요한 옮김, 옐로브릭 2016, 원제 Scary Close). 이 책의 부제 “어떻게 나는 나쁜 관계의 습관을 버렸나”에 나온 것처럼 관계의 본질에 관한 깊은 통찰이 인상 깊은,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새해 첫 날부터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의 홈페이지 Scary Close에 가면 저자의 결혼식 사진을 볼 수 있다. 도널드 밀러 덕분에 알게 되어 요즘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 책 Love Does의 저자 밥 고프(Bob Goff)도 사진에 등장한다. 이 밥 고프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사람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연을 들을 수 있으면 더 좋고. #추천]]>